퇴근길. 신호등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저마다의 스마트폰으로 밤하늘을 촬영하고 있었다. 아 맞다. 오늘이 바로 개기월식이었지. 며칠 전부터 인터넷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치이느라 가을이 언제 왔는지도, 그리고 가을의 끝이 벌써 코앞에 다가왔는지도 모른 채 살아왔던 것 같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나도 몸을 틀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정말이다. 정말로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는 개기월식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 20대 초반에 개기일식이라는 걸 처음으로 보긴 했었지만, 그땐 사진에 별 관심도 없었고 그 당시에 사용하던 핸드폰은 폴더폰인 롤리팝이라서 촬영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그냥저냥 넘겼는데, 요즘은 기술력이 좋아져서 그런가. 딱히 보정을 하지 않고 찍어도 얼추 선명하게 잘 보였다. 하지만 뭔가 2% 아쉬움이 남더라.
"카메라로 찍으면 더 잘 나올텐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씻지도 않은 채 생각을 바로 실천으로 옮겼다. 들고 있던 가방을 내팽개치고 캐논 EOS R5에 RF 24-105L F4렌즈를 마운트하고 집 앞 공원으로 뛰어나갔다. 매번 달을 찍을 때마다 생각했었지만 달 촬영은 최소 400mm 정도는 되어야 볼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던데.. 과연 개기월식을 표준줌인 24-105mm 렌즈로 담아낼 수 있을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모든사진은 무보정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첫 번째 셔터를 눌렀다. "철푸덕" EOS R5의 조용하면서도 힘없는 셔터막이 움직인다. 첫 컷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삼각대..? 그딴거 모른다. 겨우 집 앞 동네에서 촬영하는데 주렁주렁 뭘 들고 다니기도 싫다.
뭐야.. 생각보다 잘 나오잖아..?
어둠 속에서도 밝은 달을 촬영할 때는 항상 M모드 설정을 했었다. 조리개 값은 F8~11 사이에 ISO는 100, 셔터스피드는 적당히 손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촬영을 해왔었다. 딱히 습관은 아니고, 그냥 달을 찍고 싶었던 마음에 유튜브로 배운 기본 값이다. 하지만 개기월식은 일반 달 촬영과는 조금 달랐다. 어두운 하늘에 밝은 달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하늘에 어둡게 가려진 달을 촬영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A모드로만 촬영을 해왔던 나에게는 이제 막 피타고라스 공식을 배웠을 뿐인데, 바로 수능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공부는 학원빨이라고 했던가, 역시 비싼 돈 주고 바디를 업그레이드한 보람이 있다. 갓떨방..
달이 살짝 가려지는 모습을 담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평소보다 늦게 퇴근을 하는 바람에.. 내가 바라본 달은 그림자에 가려진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적월(赤月)'. 게임에서는 실컷 봐왔지만 실제로 본건 처음이다. 진짜로 빨간 달은 존재하는구나! 아카츠키!
혼자 덩그러니 보이는, 쓸쓸해 보이는 개기월식의 달을 조금 더 화사하게 담기 위해 나뭇가지 사이에 렌즈를 집어넣어서 찍은 사진들. 너무나도 만족스럽게 촬영되었다. 근데 이걸 찍는데도 상당히 힘이 들었다. 일단 나뭇가지들 때문에 AF가 계속 와리가리 타면서 달을 못 잡는다는 거.. 정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태어나 처음으로 수동초점이라는걸 사용해봤다. 처음에는 조작이 어려웠지만 컨트롤링을 휙휙 돌려보니 생각보다 수동초점 별거 없더라. 정물사진엔 가끔 수동도 괜찮겠다는 건방진 생각도 해봄.
최대 망원인 105mm에다가 1.6배 크롭모드까지 사용했는데도 내가 촬영할 수 있는 개기월식의 크기는 이 정도가 최대였다. 남들이 올리는 사진들 보면 화면에 달이 꽉 찰 정도로 크게 올라오던데, 그런 사진들은 도대체 몇 mm로 촬영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런 궁금증은 나를 중고나라로 몰고 가고, 결국 지갑을 열게 한다. 참으로 못된 궁금증이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겠는 가을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감처럼 표현해보고 싶어서 찍었던 사진들. 주변에 광량이 높아서 개기월식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감처럼 보인다.
여기까지가 나의 첫 개기월식 경험담이다. 이번 개기월식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참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사진이라는 분야에 조금 더 빨리 발을 담갔다면, 과거를 추억할만한 좋은, 그리고 많은 사진들을 남겼을 수 있었을 텐데, 모두 자신만만하게 머릿속에만 남겨놓은 탓에 지금은 떠올리고 싶어서 생각조차 나지 않는 그런 장면들이 아주 가끔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렇게 그리워하면서도, 후회하고 있으면서도, 내 머릿속의 저장공간이 고작,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에 마운트 된 메모리카드보다 작다는 걸 알면서도 게으름이라는 무게에 눌려 또다시 머리로만 기억하려고 하는 못난 습관. 나는 이 습관을 언제쯤 고칠 수 있을까? 아무튼, 개기월식 촬영 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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