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스트필터를 사용하고나서부터 역광에 재미를 붙인 나.
예전이라면 후보정으로 암부를 살려내는 게 귀찮아서 무슨 일이 있어도 태양을 뒤로 등지고 촬영을 하는데, 요즘은 그런거 없습니다. 그냥 태양만 보면 카메라를 대담하게 들어 올려서 센서로 빛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예전에 지하철이었나? 기차였나..? 아무튼 뭘 타고가면서 양평 두물머리라는 곳을 지나친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뭐 사진에도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강릉이나 부산같이 큰 덩어리 여행지에만 관심이 많았기에 이렇게 자연만 감상하는 곳에는 흥미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요즘은 그냥 자연이 좋더라구요. 날이 더우나 추우나 역시 대자연이 최고..
무작정 네비를 찍고 양평 두물머리로 출발했어요. 네비로 양평 두물머리를 검색했더니 양평 두물머리 무료 주차장이라는 게 보여서 그걸로 찍고 출발했는데요. 도착하고 보니, 양서면사무소가 나오더라구요. 제가 잘못 온 건지 아니면 여기가 정말 무료 주차장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저 안쪽 주차장에 주차를 했습니다. 요금계산이 없는 걸 보니 정말 무료주차장이 맞긴 한가보더라구요.
양서면사무소 쪽에 주차를 했다면 두물머리까지 1.1km 정도 걸으셔야 해요. 근데 걸어가는 코스가 수변산책로라서 주변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더라구요. 두물머리와 가까운 거리에도 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저는 이 코스가 주변 풍경을 더 많이 감상할 수 있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수변산책로를 걸으며 한컷한컷 열심히 담아봤습니다. 양평 두물머리는 일출과 일몰 명소라고 알려져 있어요. 확실히 그 말이 맞는 것 같더라구요. 높은 건물들이 많은 도시에서는 빛이 예쁘게 쏟아지는 시간이 한정적이라 사진을 맛있게 찍을 수 있는 골든아워가 상당히 제한적인 편인데, 양평 두물머리는 주변에 높은 산이나 건물들이 없어서인지 골든아워가 길게 느껴졌어요.
배다리라고 해서 유료로 입장할 수 있는 구역도 있는 것 같았는데요.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다른 블로거들의 후기를 보니 그렇게 흥미로운 곳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패스했어요.
사람들이 물가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길래 저도 봤더니만 오리가족이 헤엄을 치고 놀고 있더라고요. 호수공원에서도 오리들을 보긴 했지만, 다들 그냥 멍하니 둥둥 떠다니기만 해서 보는 재미가 없었거든요. 확실히 움직이는 피사체가 찍는 맛이 있어요.
양평 두물머리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양평 두물머리 핫도그가 나오더라구요. 저는 그냥 단순히 인플루언서들의 장난질이겠거니 싶었는데.. 아니 이게 무슨..?! 여길 봐도 핫도그, 저길 봐도 핫도그.. 먹을 거라고는 핫도그 밖에 없는 거예요;
먹어보니 그렇게 특별한 맛이 나는 핫도그도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여기 핫도그가 왜 유명한지 모르겠어요. 마치 오이도에 가면 조개구이 무한리필을 먹어야만 하는 것처럼 양평 두물머리 핫도그도 꼭 먹고 가야 하는 그런 관례가 있나 봅니다..
이래서 아싸는 힘들어요..
이곳의 뷰는 참 평화로워요. 저 앞으로는 강원도가 있고, 뒤로는 서울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물가를 바라봤습니다.
편의점도 있고 카페도 있고 핫도그도 있고... 조용한 마을인 줄 알았는 데 있을 건 다 있더라구요. 마치 회 대신 핫도그로 바뀌고 규모는 조금 많이 축소화된 월미도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디팡만 있으면 빼박 월미도 감성이었습니다.
오래된 느티나무도 있고 사진 예쁘게 찍으라고 만들어놓은 포토존도 있고 이것저것 찍을게 많아서 개인적으로 저는 즐거웠어요. 근데 어디까지나 이건 사진쟁이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자연 풍경을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실내 데이트를 더 많이 좋아하시는 분들이 여길 온다면 핫도그 빼고는 볼 게 없는 곳이라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어요.
두물머리 연핫도그 때문에 더부룩해진 배를 달래고자 근처 카페로 들어갔어요. 카페 이름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화장실 바로 앞에 있는 카페였던 건 확실했어요.
바닐라라떼 따뜻한 걸로 하나 주문했는데.. 맛이.. 뭐랄까.. 그 무인 카페에서 나오는 커피맛이랑 99% 비슷하더라구요... 가격도 엄청 비싸서 주문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맛까지 실망스러워서 먹다가 그냥 버리고 나왔습니다ㅠㅠ
태양을 등지고 찍는 사진도 예쁘지만 가끔은 태양을 바라보며 찍는 역광 촬영도 재미있더라구요. 일반적으로 찍을 때 재미없던 사진들도 역광으로 촬영하니 포인트가 되어버리는 느낌 같은 느낌이랄까. 언젠가 AI가 이런 사진들도 멀쩡하게 다 보정해 주는 시대가 오겠지만, 그때까지 제가 살아있을지도 의문이네요.
분명 올 때는 수변산책로를 걸어오면서 '이야 이곳에 주차하길 정말 잘했다'싶었는데, 돌아갈 때가 되니.. '아오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주차해둘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날씨가 정말 추웠거든요.
게으른 성격 때문에 일출이나 일몰사진은 꿈도 못 꾸고 있지만.. 두물머리를 다녀와보니 그런 사진 한 번쯤은 도전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서울 근교 드라이브 코스 찾으시는 분들이나 가볍게 출사 다녀와보고 싶으신 분들은 양평 두물머리 꼭 한번 가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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