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핫플
우리 회사는 온도가 높은 가마를 사용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정말 덥고 겨울에는 기분 좋을 정도로 따뜻하다. 그래서일까? 온 동네 길냥이들이 회사 창고 빈 박스에다가 새끼를 낳더라. 작년 겨울에도 임신한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회사 창고 박스에 새끼 5마리를 낳았던 적이 있었는데, 가만히 놔두니까 알아서 자신의 본거지로 물어 나르더라. 이것도 벌써 몇 개월 전의 이야기다.
새끼고양이 구조
9월 26일 평소처럼 일을 하고 있었는데 창고에서 고양이 합창단 울음소리가 들렸다. 뭐지? 하는 마음으로 직원들이 전부 소리가 들리는 박스쪽으로 이동을 해보니 어미는 없고 새끼고양이 5마리가 아직 눈도 못 뜨고 바닥에 붙어서 지들끼리 체온을 나누며 바들바들 떨면서 초음파 소리로 괭괭 울고있는게 아니겠는가..?
또 언제 새끼를 깐건지 고민하던 찰나.. 이렇게 작은 새끼고양이는 처음 본다며 손으로 만지려는 직원.. 하아.. 새끼고양이는 사람의 손길을 타기 시작하면 어미고양이가 물어가지 않는다는 내용을 아주아주아주 잘!! 알기에 나는 서둘러 직원의 손등을 냅다 후려갈겼다. "아, 왜요? 버려진 고양이일수도 있잖아요?" 라고 말하던 직원에게 나는 이 고양이의 어미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정말 얘들의 어미를 알고 있다.
매일같이 화장실을 지나다닐 때면 보이는 흰색 고양이. 얘가 바로 이 녀석들의 어미다. 맨날 불쾌하게 사람들 쳐다만 보고 절대 애교 따위는 부리지 않는 우리회사의 간식 도둑. 나는 이 녀석을 몇 번 본 적이 있었고 새끼들이 있는 박스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모습도 몇 번 본 적이 있기에 나는 요녀석의 새끼라는 것을 확신했고 때가 되면 저번 녀석처럼 새끼들을 물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생각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9월 28일 새끼 4마리가 사라졌다. 다른녀석들은 다 사라지고 이 녀석 한 마리만 박스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혹시라도 다시 어미가 다시 물어갈지 모르니 일단은 녀석을 못본척 방치했다.
9월 29일 밤낮으로 일교차가 심해지는 것 같았다. 출근할땐 춥고 일할 때는 덥고 다시 퇴근할 때는 추워지는 직장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그런 날씨 말이다. 나는 녀석이 너무나도 걱정되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박스에 녀석이 있는지부터 살펴봤는데 꼼짝을 하지 않더라. 어미가 돌아오지 않아서 굶어 죽었거나 추워서 얼어 죽은 줄 알았다. 박스를 톡톡 치면서 생사 유무를 확인하니 배가 고파서 그런 건지 처음과는 다른, 아주 미약한 소리로 울어대는 녀석.. 우유라도 주고 싶었는데, 혹시라도 사람의 손을 타게 된다면 이 녀석은 어미에게 버림을 받기 때문에.. 하루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9월 30일 결국 어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새끼고양이도 힘이 다 떨어진 모양인지 울음소리에서는 첫날 보았던 괭괭스러운 울음소리가 나지 않았고 다 죽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날씨도 쌀쌀해졌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박스에 이불과 천을 넣어준 후 따뜻한 물을 병에 담아서 박스에 넣어줬다. 따뜻한 물병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녀석은 병을 끌어안고 잠에 들었다. 혹시 몰라서 모든 작업은 비닐작업을 끼고 진행했다.. 내 냄새가 날 수 있으니..
10월 1일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회사에 일이 있어서 출근을 했다. 녀석을 살펴보니 심장이 미약하게 뛰고있더라. 망설여졌다. 이 녀석을 당장이라도 만지게 된다면 책임을 져야 하고.. 그렇다고 이대로 죽게 놔둘 수는 없고.. 일단은 고양이 단톡방에 이 녀석의 상황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결과는 암울했다. "어미는 가끔 새끼들을 다 물어가지 않고 약한 새끼라고 느꼈을 경우에는 버리기도 해요." 이게 내가 들은 답변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녀석을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1~2주차 고양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급하게 펫밀크와 젖병부터 구매했다. 사실 뭘 먹여야 할지 모르겠어서 고양이 사진이 붙어있는 우유를 골라잡았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고양이 관련 정보를 찾아봤다. 확인을 해보니 녀석은 생후 1~2주 정도 사이의 새끼고양이로 보였다.
고양이는 온도에 민감한데, 새끼 때는 스스로 체온조절을 못해서 더 예민하다고 하기에 몸을 최대한 따뜻하게 만들어준 후 펫밀크와 따뜻한 물을 섞어서 소독한 젖병에 담아 녀석에게 먹여봤다. 그랬더니 진짜 꼴깍꼴깍 우유를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니겠는가..? 이 녀석 정말 배가 고팠구나!
한번 먹고 울어서 잠시 젖병을 떼줬더니.. 혼자서 허공에 꾹꾹이를 시전?! 꾹꾹이는 새끼들이 어미 젖을 누르는 본능..? 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몰라서 다시 젖병을 들이밀었더니 또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젖병을 물고 잠이드는 녀석.. 얘 뭐지..? 너무 피곤해 보이길래 일단은 회사에 있던 박스를 그대로 들고 와서 바닥에 핫팩을 붙여주고 담요 낭낭하게 깔아주니깐 새벽에 끙끙대지도 않고 얌전하게 자더라.
분유구매 & 배변유도
10월 2~4일 솔직히 적응 못할 줄 알았는데, 새끼고양이가 생각보다 얌전했고 조용했다. 혹시라도 어미가 찾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조심히 회사에 데려가긴 했었지만 역시나 어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집에서도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아직은 새끼라서 많이 울어대긴 하지만 낮에만 울고 밤엔 또 조용하게 잠만 자서 은근 케어하기도 편한 편.
아무튼 이 사이에 우리는 녀석에게 먹일 고양이전용 분유를 구매했고, 배변유도도 성공적으로 끝냈다. 새끼고양이들은 스스로 똥오줌을 가릴 수 없어서 먹이를 먹인 후 똥꼬를 살살 문질러서 응가를 유도해줘야 한다는 유튜브 강의를 보고 따라해봤는데 녀석.. 황금색 똥을 일자로 쭈르르륵 싸더라.(설사 아님) 똥을 시원하게 싸고 나니깐 다시 조용히 잠드는 녀석이다.
동물병원
10월 5일 녀석과 함께 동물병원을 찾았다. 뭐 접종 같은 것도 해야 하고 녀석의 상태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의사 선생님도 녀석을 살펴보더니 "어우~ 너무 새끼라서 이건 접종이나 상세 진료가 불가능해요." 그리고서는 간단하게 상태만 살펴보시더니 생각보다 건강해 보인다고, 너무 케어를 잘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서는 이대로만 2주 정도 더 케어한 후에 다시 병원을 찾아오라고 하셨다.
스스로 소변
10월 6일 그동안 박스 속에서 기어만 다니던 녀석이 박스속에서 꺼내달라고 울어대더라. 그래서 니 마음대로 해봐라 싶어서 꺼내놨더니 바닥에 붙어서 기다가 스스로 일어나서 네 발로 걸어다니는게 아니겠는가..? 울음소리도 제법 건강해졌고 슬슬 호기심도 생겼는지 이곳저곳을 비틀거리며 걸어다니는게 어찌나 귀여운지.. 그러다가 처음으로 배변유도 없이 처음으로 바닥에 오줌을 쌌다. 이렇게 시원하게 싸는건 또 처음이라 이때 솔직히 울컥했음..
10월 7~9일 아직은 먹고 자고 반복이긴 하지만 이제는 눈을 완전하게 떠서 주변 사물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내가 다가가면 나한테 달라붙기도 함. 그리고 움직임도 제법 빨라져서 카메라 초점이 따라가질 못하더라ㅋㅋ
2~3주차에 접어든 오늘! 무게를 확인해보니 171g 정도더라. 보통 이맘때쯤 200g을 넘어가야 한다는데 얘는 너무 못먹어서 그런지 무게가 살짝 덜 나가는 것 같다. 그래서 3시간마다 한번씩 깨워서 분유를 주고 살짝 돌아다니게 해 준 다음 다시 잠재우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집도 새롭게 만들어줬다. 고양이들은 넓은 것보다 약간 좁은걸 좋아한다고 해서 다이소에서 작은 통을 하나 샀고 그 아래 핫팩과 부드러운 수건을 깔아줬고 외로움을 타지 않게 고양이의 크기와 비슷한 인형도 2개 넣어줬다.
밥도 배부르게 먹고 집도 만족스럽게 바뀌어서 그런가 지금은 꽤나 만족스러운지 고양이들이 만족스러울때..? 소리를 낸다는 골골송도 큼지막하게 들려주신다. 골골송이라는걸 생전 처음 들어본 나는 몸에서 드르륵 소리가 나길래 어디 고장난줄 알고 한참을 걱정했었다.
새로운 공간이 제법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골골송을 한곡 뽑아내시더니 곧바로 잠에 빠진 새끼고양이.. 정말 너무 사랑스럽다.
아직은 너무도 어리기 때문에 임시보호 차원으로 새끼고양이를 케어하고 있는 중이다. 보통 이 기간에는 먹고 싸고 자고만 반복한다고 하는데, 얘는 거의 잠만 잔다. 그리고 너무 작을 때 구조를 해서 그런가 하루하루 몸이 조금씩 커져가는 것도 느껴진다. 아직은 임시보호 차원으로 데리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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