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지긋지긋하게 내리던 비 때문에 새로 산 후지필름 X-T4를 집에 고스란히 모셔둘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엔 그치겠지.. 토요일엔.. 일요일엔.. 하는 마음으로 출사만을 기다렸지만, 어림도 없지. 오히려 더 미친 듯이 쏟아지더라. 하지만 운이 좋게도 저번 주 비가 내리지 않는 주말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쩔 수 있나? 소리 소문 없이 비가 다시 내릴 수 있으니 후다닥 카메라를 챙기고 북촌 한옥마을 출사를 다녀왔다.
이 날 가져간 렌즈는 XF18-55mm(1855)렌즈였다. 이 렌즈는 많은 후지 입문자들이 사용하는 번들줌렌즈이기도 하며, 번들렌즈 중에서는 성능이 꽤나 좋다고 하던데, 단렌즈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1855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볍게 원렌즈로 사용하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사용한 필름시뮬레이션은 감성의 대명사.. 클래식네거티브였고, 아래의 사진 전부, 후보정하지 않았다.
Fujifilm X-T4 / XF18-55mm F2.8-F4
Classic Neg
뚜벅이답게, 출발은 집 근처 역인 부천역에서 시작했다. 출발하기 전 배를 채우기 위해 부천역의 터줏대감인 롯데리아에서 가볍게 끼니를 때웠다. 세트메뉴를 시킬 때 감튀를 일반 or 웨지로 선택할 수 있게 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감튀보다는 달달하게 간이 되어 있는 웨지감자가 훨씬 맛이 좋았다.
버거를 먹으면서 창밖을 바라보니 할아버지들이 일렬로 쭉 앉아계셨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않아계셔서 "뭘까?" 라며 한참을 생각해봤지만.. 다 먹고 나갈 때까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버거를 먹으며 셔터질을 했을 때 개인적으로 클래식네거티브가 생각처럼 만족스럽지 않았다. 라이트룸이나 루미나를 이용해 후보정만 해왔던 나에게는 더더욱 이 색감을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감성이리라.. 생각하여 계속 찍어보기로 했다.
일단 조금 크게 돌아보자는 생각으로 회현역에서 내렸다. 나와 여자친구는 난생처음으로 남대문시장을 둘러보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올드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은 놀랐었다.
전국제일수입명품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계단이 있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길래 궁금증에 한번 들어가 보았다. 여러가지 잡다한 수입품을 파는 것 같은데, 처음 보는 제품들도 많았고 신기한 음식들도 정말 많았다.
서울이지만, 서울이 아닌 느낌. 뭔가 시골마을에서 차를 타고 시내에 있는 커다란 장터에 나온 기분이다.
클래식네거티브, 참 오묘한 필름시뮬레이션같다. 전체적인 색감은 깊어지면서 이상하고 요상하게도 초록색은 잘 살려내는, 정말이지 쓰면 쓸수록 매력이 넘치는 시뮬레이션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길가다가 골목을 들여다보니 어마어마한 양의 실외기가 붙어있는 건물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분명 크롭하면 멋진 사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찍었는데.. 어쩌겠음? 후지인데ㅎㅎ 후지는 크롭도 귀찮아진다. 무지성 JPG 짱
누가 먹이를 줬는지.. 엄청 많은 비둘기떼가 분수 앞에서 뭘 먹고 있더라. 나는 비둘기떼만 보면 이말년시리즈의 사람이 비둘기가 되고 비둘기가 사람으로 되는 전염병(?)이야기가 제일 먼저 떠올라서 비둘기가 그냥 너무너무 혐오스럽다.
조금 더 걷다보니 저~멀리 남산이 보였다. 가끔 인터넷에서 이러한 구도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항상 어떤 장소에서 찍은 건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발견하게 되니 새삼 뿌듯해진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1855렌즈로는 조금 버겁겠지 싶었는데 뭐, 딱히 그런 것도 없더라. 55mm로 땡긴다음 찍으니 적당히 보기 좋은 사진을 건진 것 같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는 1855가 살짝 못미더웠지만.. 여기서부터는 슬슬 1855의 성능에 감탄하는 중..(소니 1655를 생각하면..)
서울은 높은 건물이 정~말 많아서 어디를 찍던 전부 다 웅장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물들이 감각적이고 아름답기에 간단히 스냅을 찍기에는 정말 최고인 것 같다.
여긴 맥주집인걸까?
한참을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청계천까지 왔다.
23mm였는지, 35mm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사진이 너무 이쁘게 찍힌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배경에 풀이 많으면 클래식네거티브의 뽕은 치사량에 다다른다. 이게 정말 라이트룸으로도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후지만의 색감일까?
너무 오랫동안 걸어 다녔는지.. 해가 슬슬 지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이제부터 사진에 노이즈가 잔뜩 끼어있을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
55mm f/4.5로 찍은 사진인데, 생각보다 배경이 너무 이쁘게 날아간 것 같다. 여태 이런 느낌은 f/1.4~2정도는 되어야 할 줄 알았는데, 번들렌즈로 이 정도 선명도와 아웃포커싱이라니? 말이 안된다.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것처럼 미친 번들인듯.
무지성 셔터질로 건진 사진인데 마음에 든다. 후보정으로 그레인 적당하게 가미해주고 화밸만 만져주면 필름 뽕 오질듯?
색감 진짜 너무 완전 마음에 든다.
신문 오토바이에 감성 한 스푼.
종묘에서 창경궁으로 넘어가는 길에 담장 보행로라는 길이 있었다. 어느 정도 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터널에 창문까지 뚫어놓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곳을 K-관광지로 만들고 싶어 했던 모양인 것 같다. 직접 걸어보니 감성은커녕.. 모기에게 잔뜩 뜯기기만 했다. 그 정도로 모기가 정말 많다.
진짜 어두워지기 시작함ㅋㅋ 한시라도 빠르게 후지로 북촌을 담아내기 위하여 우리는 축지법을 썼다.
대충 북촌 한옥마을로 가는 길목에 와플가게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때 K-유튜브에서 유행했던 크로플이다. 크로와상을 와플머신으로 눌러서 크로플이라 부르는 것 같은데.. 이게 얼마나 맛있을까 싶어서 오리지널 크로플을 구매해서 먹어보니 띠용?! 오함마로 머리를 쌔게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그냥 개존맛이었음ㅋㅋ 달달~~허이, 고소~~허이 와플에 크로와상 결이 살아있어서 정말 오묘한 맛이 났다.
여기서부터가 아마도 북촌인 것 같다. 그리고 이곳은 많은 블로그에서 감성 사진으로 많이들 찍어가는 백양세탁소다. 사장님은 알고 계실까? 자신의 세탁소가 감성 뿜뿜이라는 것을?
결국 해가 저물고 말았다. 빛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최대한 선명한 사진을 남기기 위해 조리개를 최대 개방한 채 X-T4 바디떨방과 1855의 손떨방을 믿고 셔터를 눌러보았다. 놀랍게도 삼각대가 없는 야간, 셔터 속도 1/10~1/20 였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소니 a6400을 사용했을 땐 손으로 아무리 열심히 고정해도 셔터 속도 1/40초 이하로 내려가면 흔들리거나 초점 나간 사진 때문에 머리가 아팠었는데 X-T4와 XF1855는 바떨방과 렌떨방이 합쳐지니까 조명이 없는 야간에도 편안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사진은 빛의 대비가 극명하게 이루어지는 사진이라 너무 마음에 든다.
북촌 한옥마을을 조금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도 너무 늦었고 동네에서 시끄럽게 떠들수는 없기 때문에 중간에서 내려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X-T4 & XF1855, 정말 괜찮은 조합
소니와 캐논을 사용했을 때 번들렌즈는 출사 한두 번 나갈 때 써보고 다 중고로 팔아버렸었다. 망원단의 선명도는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고 보정으로 살려본다 하더라도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 단렌즈만 물려서 사용했었다. 후지 XF1855역시 그렇게 써보고 팔아버릴 생각으로 구매했음ㅋ
이 렌즈를 가지고 집 앞 공원으로 출사를 나갔었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좋은렌즈라는 느낌이 아닌 것 같아, 바로 중고로 팔아버린 후 선예도 짱짱맨이라는 XF1655를 구매했는데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
XF1655는 렌즈의 무게가 엄청 무겁다고 소문난 렌즈! 그냥 간단하게 집에서 한두 번 들었을 때는 들만한데?라고 생각했다가 출사 한번 나가고 바로 팔아버렸다. XF1655 무게는 655g으로 제품 설명상 607g인 X-T4 바디에 마운트 했을 때 1.2kg이 넘어버림ㅋㅋ 출사 나갈 때 한쪽 어깨나 목에 걸고 다녔는데 뼈가 박살 나는 줄 알았다ㅋㅋ
애초에 나는 후지를 서브로 가볍게 사용하면서 풀프를 메인으로 굴릴 생각이었는데 서브마저도 이렇게 무거워버리면.. 그냥 뭔가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XF1655를 방출하고 경박단소!를 가슴속으로 외친 후 XF23/2나 XF35/2를 들일 생각이었는데.. 1생각해보면 어차피 필름시뮬레이션 먹이면서 그레인 흩뿌릴 거면 굳이? XF1855를 사면 다 해결되는데 굳이?!라는 생각이 확신되면서 내가 원하는 화각대의 데일리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줌렌즈인 XF1855를 다시 구매했다.(X-T4 + XF1855도 그렇게 가볍지는 않다..)
다시 구매해서 사용해보니 후지에서 가볍게 사용할만한 표준줌렌즈로는 XF1855만한게 없는 것 같다. 비록 고정조리개가 아닌 가변조리개이긴 하지만 가격, 성능, 크기, 외모, 떨방까지 고려해본다면 원렌즈로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는 렌즈라고 생각된다. 바떨방이 없는 렌즈라면 더더욱! 그래서 나는 단렌즈를 들인다고 하더라도 XF1855는 절대 팔지 말고 가지고 있어야할 렌즈 No.1이라 정했다. 2
이제 막 사진을 배워가는 초보자라면 처음부터 남들이 좋다고 하는 단렌즈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표준줌렌즈로 본인이 선호하는 화각을 경험해보고 그에 맞는 단렌즈를 구매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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