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나와 여행을 함께해왔던 후지 X-T4와 렌즈들을 모두 처분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후지 장비를 모두 판매했다. 6개월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반도체 시장 때문이었는지.. 중고시장의 가격대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높더라...
양심에 조금 찔리긴 하지만 내가 구매했을 때보다 손해는커녕, 오히려 약간의 이윤을 남기고 판매할 수 있었다. 어쩌겠는가? 시장 상황이 이런 걸;; 나도 꿀좀 빨아보자ㅋ
아무튼 이렇게 잘 사용했던 후지 X-T4를 판매한 이유는 어처구니 없게도.. 나의 후보정 스타일과 맞지 않아서였다.
애초에 내가 후지 카메라를 구매한 이유가 후보정 작업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름시뮬레이션이라는 선택지가 있는 후지를 선택했던 것인데.. 이 필름시뮬레이션이 정말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큰 만족도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계륵'
필름 특유의 느낌으로 자체 보정 해주는 기능이 정말 쩔어보여서 장비를 다 팔고 후지로 이사를 왔던 것인데, 막상 카메라를 구입하고 그토록 원했던 필름시뮬레이션을 사용해보니 기존 보정작업보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더 늘어난 것만 같았고 생각보다 그렇게 만능(?)의 느낌이 아니라는 부분에서 조금의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후지의 꽃이라 불리는 클래식네거티브는 정말 진득하고 쫀득한 필름 특유의 느낌을 정말 잘 살려주는 것 같기에 후지를 구매하게 된다면 꼭 한번 사용해보고 싶었는데.. 몇 일 사용을 해보니 결과물마다 케바케였다. (여자친구는 물 빠진 색이라고 싫어함ㅋ)
클래식네거티브를 제외하고도 X-T4에는 정말 많은 필름시뮬레이션이 탑재되어 있지만.. 글쎄..? 난 쓰던 것만 계속 쓰더라ㅋㅋ.. 그야말로 계륵이었다.
결국 나는 후보정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기 위해 선택했던 후지 X-T4를 가지고 계속해서 RAW로만 촬영하고 라이트룸 & 포토샵으로 후보정을 하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장비를 처분하면 250만원 정도가 생기는데.. 이 금액이면 차라리 풀프레임 카메라를 가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정말 대가리가 깨져버린 것이었던 걸까..?
그렇다! 애초에 필름시뮬레이션이라는 기능 하나만 보고 화소 2,600만따리 크롭 바디를 200만원 주고 구매한 나는 정확히 대가리가 깨졌었던 것이다. (풀프라면 또 몰라..)
이 금액대라면 가성비 풀프레임인 A7M3를, 혹은 그 이상의 바디를 구매하고 서드파티 렌즈들까지 구매하여 행복사진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이 사양에 이 금액대 '크롭'바디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라고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중고나라에 판매글을 작성하고 있더라.
후보 바디 라인업
- 캐논 EOS R6
- 소니 A7M4
- 소니 A7R4
약 1개월간 일렉트로마트를 돌아다니며 직접 만져보고 다음에 구입할 바디들을 알아봤는데, 대충 위의 3가지 후보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었다. 금액대들도 서로 비슷비슷했고, 사용자들의 평가도 좋았던.. 내 기준에서 훌륭한 바디들임에는 틀림 없었다. 참고로 나의 사용 패턴은 사진99 : 영상1이었기에 이 조건을 전제로 깔고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캐논 EOS R6
진짜 그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만족감 오졌던 바디였다. AF 속도 미쳤고, AF를 잡아내는 범위 역시 미쳤었다. 일렉트로마트에서 카메라 손에 쥐고 반셔터 눌렀을 때 저 멀리 있는 피규어 눈깔을 AF로 정확하게 잡아낼 때.. 그때의 오르가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액정 화질도 좋고, 무늬만 터치였던 소니와는 다르게 메뉴 조작 역시 터치로 가능했다.
하지만 300만원 가까이 주고 사는 바디가 재질이 강화 플라스틱이라는게 뭔가가.. 조금.. 뭔가한.. 그런 느낌이었지만, 막상 만져보니 이건 그런대로 적응할만했던 것 같다. 문제는 '화소'
아무리 대부분의 사진들이 온라인에서 소비된다고는 하지만.. 2,400만도 아닌.. 2,010만 화소라는건 나에게 있어서 조금의 아쉬움이 있었다. 후보정을 할 때 분명 크롭으로 잘려나가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럴 때 EOS R6가 과연 그런 부분에서 높은 만족감을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R6 RAW 샘플을 다운받아서 직접 보정을 해봤더니.. 원본 자체는 왕덱스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지 진짜 이게 2천만 화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선예도를 보여주었지만, 조금이라도 크롭을 하는 순간엔... OMG
대신 R6이 주는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2천만 화소가 주는 용량의 자유로움, 8스탑의 무시무시한 손떨방이 있다. 그치만 그래봤자 2천만 화소라는게.. 플라스틱 바디라는게.. 조금은 아쉬워서 보류하기로 했다.
소니 A7M4
R6보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돈을 조금만 더 보태면 소니 최에에에신 바디인 3,300만 화소의 A7M4 구매가 가능했다. 정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후지를 다 팔고나니 A7M4라니..? 바로 만져봤다.
씹고 뜯고 맛본 결과.. 기기 스펙은 구글링 하면 나오니깐 스펙에 대한 내용은 집어치우고.. 그냥 A7M4는 영상과 사진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최고의 바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거기까지.
사진만 99로 사용하는 나에게는 그다지 메리트가 있어 보이는 바디 같지가 않아서, 과감하게 패스했다.
소니 A7R4
A7M4를 알아보던 중 6100만 화소의 A7R4 매물을 보게 되었다. 맙소사? 중고 매물 기준 미개봉 새제품이 A7R4가 더 저렴하지 않은가? 전부터 고화소 뽕을 맛보고 싶었는데.. 비싼 가격 때문에 구매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X-T4를 제물로 바쳤던 내 지갑은 이미 두둑해졌기 때문에😀
- 고화소라 이미지 용량이 크다던데..
- 고화소는 비싼 렌즈(GM)를 써야 효과를 본다던데..
- 고화소는 야간에 취약하다던데..
그런데, 막상 고화소 바디를 구매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여러가지가 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꼼꼼하게 커뮤니티와 각종 포럼들의 글들을 참고하였고, 실제로 그들이 촬영한 사진들과 후기를 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더라.
용량이 커서 감당이 안된다는 부분은.. 주로 연사를 찍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문제지, 나처럼 한장한장 찍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아닌 것 같았고! 꼭 GM렌즈가 아니더라도 A7R4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많아 보였다. (탐론 28-200이나 24-105g로 잘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더라.) 야간에 취약하다는 것 역시 감도를 올려서 사용할 생각이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거다!
A7R4A 구매!
결국 나는 A7R4에서 액정 화질이 개선된 A7R4A를 구매하게 되었다. 가격은 미개봉 새제품 기준으로 300만원! 6100만화소이지만 APS-C 크롭에서도 26.2MP 화소 지원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취미로 사진을 즐기기에는 조금 오바하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성격을 아주 잘 안다. 한 번 눈에 들어온 제품은 어떻게든 구매하게 된다. 그 사이에 다른 걸 구매했다고 하더라도,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구매하고야 만다.
마음에 안 들면 조금 손해보고 팔면 그만이다. 어차피 주식처럼 반토막 나는 것도 아니잖아..?
아무튼, 나는 여러가지 바디들을 비교해본 후 A7R4A라는 바디를 선택했는데.. 만약에라도 이 카메라를 다시 판매하게 된다면 캐논 R6를 구매하거나.. 조금 더 대가리가 깨져서 R5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R5와 R6는 매력적인 바디였음..;;
여기까지가 내가 A7R4A를 선택하기까지의 약 1개월간의 과정이었는데, 혹시라도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그냥 내가 고민했던 내용들을 정리해서 작성해봤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후지가 나쁘다는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후지는 스냅용으로 가볍게 쓰기 최적화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카메라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 경험이 말해주니깐!
하지만 나처럼 후보정으로 사진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아쉽지 않을까 하는게 내 결론이다. 어쩌면 나는 카메라보다는 현미경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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