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회관
서울에서 맛집을 찾는건 슈퍼마리오 1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것만큼이나 이지한데, 땅덩이가 넓은 강원도에서는 맛집은커녕.. 식당 자체를 찾는게 쉽지 않다. 찾는다고 해도 고기집이나 횟집처럼 육류파와 해산물파로 나뉘기 때문에 의견 대통합도 어렵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식당을 찾는건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오늘 소개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평창맛집 대관령 황태회관은 황태라는 식재료를 가지고 만든 다양한 요리를 판매하는 곳으로 술안주를 찾는 어르신들부터 생선을 싫어하는 아이들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식당이다.
멀리서 바라본 황태회관 건물은 낡은 주택같았는데, 내부는 강원도 식당치고는 나름 최신식이었다. 보통 이런 식당 특징이 식탁 위로 날아드는 파리+오랜 연식에서 풍겨오는 나무냄새인데 여긴 클린함 그 자체였으니깐 말이다. 높은 층고도 이상적이었다. 분명 이 건물은 복층이었을텐데 2층 바닥을 허물고 시원하게 층고를 올려버린건 신의 한 수 같았다. 주문을 하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도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는건 역시나 넓어 보이는 공간감뿐.
황태회관의 메뉴판. 기본적으로 즐길 수 있는 간단한 식사류는 저렴한편이지만 안주류나 식사류로 넘어갔을땐 조금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계곡에서 판매하는 몇십만원짜리 백숙보다는 합리적이지 않은가?
나와 여자친구는 황태정식과 오삼불고기로 배를 채우려고 했는데, 불고기같은 메뉴들은 2인 이상부터 주문이 가능하다길래 눈물을 머금고 동일한 메뉴인 15000원짜리 황태정식 2개를 주문했다.
안쪽에는 다른 공간이 있나 싶어서 둘러봤는데 오우; 여기도 사람이 많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렇게 외진 곳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분들은 관광버스 투어코스중 하나로 황태회관을 방문한 것이었다. 어쩐지 한국사람들도 많았지만 외국인들이 특히 더 많더라.
건물 한쪽 벽면에는 평창맛집 대관령 황태회관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과 방송미디어 캡쳐본들이 액자에 걸려있었다. 몇몇 사진들은 그냥 구도만 다르게 해서 여러장 찍은 것 같은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음식 깨끗하고 맛만 좋으면 그만이다. 근데 여기 1985년인가? 1980년에 만들어진 것 같은데 진짜 역사가 깊구나. SNS에서 유행하는 신생 식당들은 많이 돌아다녀봤는데 이렇게 오래된 식당은 처음이라 음식에 거는 기대감이 크다.
키오스크로 주문한지 5분도 안 됐는데, 황태구이정식이 바로 테이블에 세팅됐다. 와.. 강원도 식당 여럿 다녀보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나오는 강원도 음식은 진짜 처음이다.
찬의 구성은 심플 그 자체다. 구성보다도 양이 살짝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다행히도 셀프바에서 무제한으로 가져올 수 있어서 여러번 음식을 리필했다.
황태국도 기본 서비스로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게 아주 맛도리였다. 황태회관에서 판매하는 황태국밥 애기버전인데 진짜 국물맛이 깊고 진했다.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여기에 밥말아서 기본 찬만 먹고 나가도 아무런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준. 진짜 황태 전문점에서 만드는 국밥은 이런 맛이구나라는걸 느낌.
반찬중에서도 1티어. 뭔지도 잘 모르는 이 나물을 몇번이나 리필했는지 모르겠다. 우거지를 푹 삶아서 참기름 넣고 한번 볶아낸 맛인데 질기지 않고 부드러워서 밥반찬으로 아주 딱이었다.
기본 반찬을 하나씩 먹어보며 맛을 평가하고 있었는데 지글지글~ 알루미늄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차차 황태구이가 있었구나. 부실해 보였지만 기본 이상은 확실하게 해내는 반찬들 덕분에 메인 메뉴인 황태구이를 깜빡 잊고 있었다. 내가 이걸 돈주고 주문했는데 정작 다른걸로 배를 채우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멍청한 사람인가.
황태회관의 황태구이는 1인분당 2줄이 제공된다. 살짝 양이 아쉬워보였으나 막상 먹기 시작하니 밥 한공기에 황태구이 2줄이면 밥 한공기를 다 먹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황태 사이사이에 미처 제거되지 못한 가시들이 있긴 하지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빨로 치킨 가슴살 씹듯, 살짝 힘줘서 씹으면 뭐가 살이고 뭐가 가시인지 모르는 수준이니 말이다. 그냥 먹으면 치킨가스를 양념치킨소스에 버무린 맛이 나고 된장 넣고 쌈을 싸먹으면 오버쿠킹된 소고기를 먹는 식감을 가진 황태구이. 이 맛은 먹어봐야만 안다.
엄마가 가끔 제삿상에 올라가고 남은 황태를 가지고 후라이팬을 이용해 양념구이를 해주시곤 했었기에 살면서 한번도 황태구이를 돈주고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황태회관에서 먹어본 황태구이 때문에 "아 이것도 돈주고 사먹을만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추석을 기념해서 사장님이 밤떡을 테이블마다 한개씩 돌리셨다. 우리나라에 다양한 떡이 있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떡 안에 밤 하나가 떡하니 들어가있는건 처음이었다. 떡과 밤이 입에서 따로 놀아서 이게 뭔맛인지.. 잘 알지는 못했지만 뭔가 이지역만의 음식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먹으니 조금 특별한 맛이 나는 것 같기도..
제일 먼저 눈에 보인게 황태회관이라서 이곳을 선택한건데, 계산하고 밖으로 나오니 이 주변 일대 식당들이 전부 다 황태전문점이라는거;; 배추만 유명한 줄 알았더니 황태까지;; 대관령에는 없는게 없는 모양이다.
참고로 대관령맛집 황태회관에서 식사를 하고나서 영수증을 지참하면 바로 옆에 있는 이 카페에서 음료를 10% 할인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이 너무 늦기도 했고.. 10%라는 금액이 그렇게 메리트 있다고 느껴지질 않아서 우리는 카페를 방문하지 않았지만 인터넷으로 후기를 찾아보니 이 카페 음료 맛이 제법 좋은 모양이더라. 다음에는 방문해 봐야지.
조용한 마을 대관령의 황태회관. 나는 이곳을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안반데기를 다녀오면서 이곳을 지나간 적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회사에서 말을 하니 직장 상사가 여기까지 와놓고 황태회관도 안 갔다 왔냐고 막 뭐라뭐라 하더라? 아니 여기가 뭐 얼마나 대단한 곳이길래 저 난리 인가 싶었다. 때마침 추석이기도 하고 엄마집이 여기서 멀지 않아서 겸사겸사 방문했는데 인정하기는 싫지만 직장상사의 말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던 곳이다. 요즘 SNS에서 유명하다는 식당들은 전부 다 실망스러웠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맛집을 찾은 것 같아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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