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A7R4A
아마도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소니의 신규 바디인 A7M4와 A7R4 혹은 개선 버전인 A7R4A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제 막 출시된 뜨끈뜨끈한 A7M4를 구매하려고 보니 가격은 한참 미쳐버려서 300만원 가까이하고, 300만원이나 주고 이걸 구매할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 다시 장터를 둘러보니 비슷한 가격대의 고화소 바디인 A7R4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이 고민만 1개월을 넘게 했었다. 분명 마음은 M4인데, 중고장터에는 이미 양심이라곤 개나 줘버린 되팔렘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에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꿀매물인 A7R4A를 보게 되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내 손안에 쥐어져 있더라.
그리하여 A7R4를 사용한지 어언 3개월이 되었다. 사진에 있어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사용하면서 느낀 부분들을 한 번쯤 글로 작성해보고 싶었다. 입 닫고 사용해도 되지만 이렇게 시간을 투자하면서 글을 작성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A7R4A를 구매하기 전에 실사용 후기를 찾아보고자 초록창에 검색을 해봤었는데, 거긴 이미 광고판으로 몰락을 해버린 것인지.. 제대로 된 후기글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이 제품은 제품을 대여받았다는 둥, 소정의 원고료를 받았다는 둥 죄다 광고들 뿐이기에 구매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글들이 하나도 없더라.
돈을 받고 쓰는 글인데 솔직할 수가 있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내가 작성해본다. 한때 신뢰의 단어였던 '내돈내산'이 언제부터 변질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돈 300만원을 주고 샀고 매일매일 감가 되는 중고 가격을 보고는 눈물을 흘린다.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도 울고 있다.
A7R4A 장점
고화소뽕은 한 번 걸리면 답이 없다.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바디는 소니의 A7R4A다. 렌즈는 여행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24105G 렌즈와 화질을 위한 35GM을 사용하고 있다. 바디에 비해 렌즈는 조촐한 편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후지 X-T4를 잘 사용하다가 갑자기 A7R4A로 유턴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나는 예전부터 고화소 바디가 너무나도 궁금했었다. 자면서도 고화소 바디가 생각났고 일어나면서도 고화소 바디가 생각났을 정도로 너무너무 고화소 바디를 갈망해왔다. 어느날 X-T4로 찍은 사진을 보정하려고 보니의 사진이 밋밋하다고 해야하나.. 선명한 맛이 너무나도 없더라. 200만원이나 주고 샀는데, 만족도는 캐논 30만원짜리 M50보다도 못한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A7M4가 혜성처럼 출시되었다. 3,300만 화소에 크리에이티브 룩, 메뉴 터치까지 뭐 하나 거를 타선이 없었다. 그래서 구매를 하려고 했다. 근데 확실히 인기가 있는 라인인지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구매하기 힘들었고 되팔렘들에게 웃돈을 줘야만 구할 수 있었다. 양아치들한테는 절대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계속해서 매물을 찾던 중 A7R4 매물을 보게 되었다. 6,100만화소의 바디가 3,300만따리보다 저렴하다니! 말이 안됐다. 심지어 액정이 개선된 A7R4A모델은 A7M4보다도 가격이 저렴하더라.
그래서 구매해봤다. 맞다. 이건 어디까지나 단순한 호기심이다. 사람들이 고화소 바디는 노이즈가 심하고 블러가 심해서 초보자가 사용하기에는 어렵다고 하던데, 그건 난 모르겠고 무조건 경험부터 해보고 싶었다. 고화소와 관련하여 이런 말이 있다. "고화소뽕은 직접 경험해봐야만 치료할 수 있다. 아무리 백날 말해줘 봐야 모른다." 그렇다. 나는 모험을 떠나보기로 했다.
01. 크롭의 자유
고화소의 장점은 크롭?
사진가들에게 고화소의 장점에 대해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크롭이 자유롭다." 내가 직접 고화소를 경험해보니 이 말을 공감할 수밖에 없겠더라. 일단 나는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그래서 보정을 할 때 구도를 수없이 변경한다. 때로는 이곳저곳 숭덩숭덩 잘라내기도 하는데 이걸 크롭이라고 한다. 아래의 사진은 제주도에 갔을 때 용머리 해안에서 반대편에 있는 작은 섬을 찍고 원본에서 크롭을 한 것이다.
위의 사진이 원본, 아래 사진이 크롭 결과물인데, 원본사진에서 보일까 말까 하는 부분도 이렇게 크롭해서 사용이 가능하다. 사실 저기 있는 배를 의식하고 찍은 건 아닌데, 집에 와서 보정하려고 보니깐 낚시하는 사람들과 배가 보이더라.. 이게 바로 고화소뽕..!!😍
마찬가지로 왼쪽 원본사진을 크롭하면 오른쪽과 같은 사진을 얻을 수도 있고, 여기서 한번 더 크롭을 하면 아래와 같은 접사 느낌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고화소 바디는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여러 가지 구도를 보정으로 시도해볼 수 있으며, 어디를 크롭하냐에 따라 광각&망원 효과를 주는 것이 가능하다.
02. 크롭모드 및 리얼타임트래킹
다른 소니바디에도 이 기능이 있지만, A7R4A에서 APS-C/Super 35mm모드를 이용하면 6,100만 화소를 2,600만 화소로 낮출 수 있다. 화소가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고화소 바디이기 때문에 명기인 A7M3보다 화소가 높다. 그리고 35mm 단렌즈를 50mm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인물사진을 찍을 때 크롭모드를 애용했는데, 6천만 화소의 인물사진을 보정하는 것이 너무 빡새서 크롭모드로 2,600으로 내려 사용했다. 이 기능을 커스텀 버튼에 등록해서 바로바로 전환시킬 수 있는데, 아주 꿀기능이라고 본다.
리얼타임트래킹은 AF가 졸졸 따라가는 기능인데 피사체에 한번 들러붙으면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잘 따라간다. A9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일상생활에서도 차고 넘치는 편이다. 이건 백날 말해줘도 모른다. 직접 써봐야 안다.
03. 그립감 및 디스플레이 해상도
3세대인 A7M3보다 4세대인 A7R4A는 그립감이 진짜 묵직하니 좋았다. 내가 손이 큰 편이 아니라 캐논의 R6와 R5가 살짝 크게 느껴졌는데, R4는 오우; 그냥 착착 감기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 이건 개개인에 따라 다르니 더 길게 설명한 필요는 없을 듯?
그리고 디스플레이 해상도는 개선된 A모델이라 그런지 너무 만족스러웠다. 지인이 사용하는 A7R4와 내가 가진 A7R4A를 비교해봤는데, 그냥 해상도 자체가 넘사벽임; 지인도 개선모델 보더니 완전 다른 바디같다고 했다. 솔직히 내가 봐도 그렇긴 하다ㅎㅎ..
A7R4A 단점
여기까지가 내가 A7R4A를 사용해보면서 느낀 장점들이고 이제부터는 단점에 대한 내용이다. A7R4A는 분명 좋은 바디지만, 전문사진가, 포토그래퍼가 아닌 일반인 기준으로 봤을 땐 고화소가 가져다주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고 느껴졌다. 물론 내가 미숙하기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말이다.
01. 용량의 압박감
A7R4A는 고화소다. 6,100만 화소로 해상도가 무려 9504x6336다. 사진 전문가들도 A7R4A의 6천만 화소가 제공해주는 용량이 부담스럽다고 하던데 실제로 내가 사용을 해보니 큰 해상도만큼 용량도 어메이징했다. A7R4A는 RAW 저장방식이 압축 / 비압축 밖에 없는데, 압축으로 저장할 경우 60MB, 비압축으로 저장할 경우 용량이 무려 120MB다.
압축 | 비압축 | JPG |
60MB | 120MB | 30~40MB(최고화질) |
비압축으로 1장 찍으면 스타크래프트 립버전이, 10장 연사치면 카트라이더가, 700장 찍으면 메모리카드에 GTA5가 설치된다고 보면 된다. 정말 어마어마하다. 물론 꼭 비압축으로만 찍으라는 법은 없다. 전문가들도 암부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보정작업을 하지 않는 이상 압축으로 찍어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상업용은 비압축 추천)라고 하니깐 말이다. 그래도 한 장이 60MB라니.. 확실히 부담이 되는 부분이겠다. JPG도 화질에 따라 다르지만 최고화질 기준 30~40MB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근데 나는 연사를 쓰지도 않고, 한장한장 신중하게 찍는 스타일이라 용량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지 못할 줄 알았는데, 외장하드를 보니 벌써 1테라가 다 찼더라.. 다량의 외장하드를 이용하여 사진을 백업할 수 있는 여건이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일반 사용자들에겐 분명 이 부분은 걸림돌이 될 것이다.
02. PC 사양
전문가들이 고화소 바디를 추천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PC 사양이 있다. 사진 관련 커뮤니티에서 어떤 유저가 말하길, "고화소 바디는 바디 자체만으로도 비싸지만,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더 비싸다." 이 말은 나도 격하게 동의한다. A7R4A로 촬영한 여자친구 사진을 포토샵으로 보정하려고 보니.. 한때 배틀그라운드용으로 셋팅한 내 PC가 처음으로 비행기 엔진급 굉음을 내더라. 확대할 때마다 프리징 걸리고, 저장할 때 미리 보기 생성하는데도 렉걸리고.. 정말 PC 사양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진을 라이트룸으로 색감만 만지고 넘어가는 편인데, 이것도 한두 번이지. 포토샵이 필요로 할 때는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막막함을 느꼈던 것 같다. 후보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이 부분이 크게 거슬리지는 않겠지만, 나처럼 모든 사진을 보정하는 스타일이라면 본인의 PC가 고화소 사진을 보정하기에 충분한 사양인지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03. 핸드블러
이 바디를 사용하면서 처음으로 카메라 파지법과 호흡법에 대해 다시 한번 더 공부했던 것 같다. 분명 카메라 디스플레이에서는 칼핀인데, 집에 와서 확대하면 블러가... 나도 안다. 이건 100% 사용자의 문제라는 것을. 근데 표준화소 카메라였다면 보이지 않아야 할 블러까지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니깐.. 크롭도 못하고 버려지는 사진들이 은근 많았던 것 같다. 라이트룸에서 리사이징해서 해상도를 줄여버리면 그렇게 티는 안나지만, 그래도 뭔가가 참 뭔가스럽다.
04. 부팅속도
믿기지 않겠지만 부팅속도가 어메이징하게 느리다. 전원 OFF 상태에서 ON으로 돌리면 2~3초 정도는 기다려야 부팅이 끝난다.(못믿겠으면 위의 영상을 봐라) 개똥 뿌직필름을 사용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필자가 토종 한국인이라 느린 걸 싫어해서 그런가, 부팅속도가 너무 답답하니깐 사진 찍을 순간의 타이밍을 놓치는게 정말 짜증났음.
05. GM급 렌즈
솔직히 G라인만 써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고화소는 그에 맞는 고급 렌즈 써야함요ㅎ.ㅎ" 이거 다 개소리인줄 알았는데 필자가 GM렌즈를 직접 구매하여 사용해보니 생각이 바뀌었음. 다른건 몰라도 A7R4급 고화소에는 GM급 렌즈가 맞지 않나 싶음..ㅎ(그래서 급하게 35GM을 들이긴 했지만) 아무튼 확실히 다른 것 같음.
근데 이 다르다는 표현이.. 사진의 퀄이 180도 달라진다는 뜻이 아니고 1:1 확대했을 때 깔끔하게, 샤프하게 보이냐 안 보이냐를 말하는 것. A7R4같은 고화소 바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라이트룸으로 사진 뜯어보고 확대하는 것을 좋아할텐데.. 쨍하고 샤프한 이미지를 추구한다면 GM이 맞지 않나 싶다. 근데 렌즈가 기본 200만원 가까이하는데 이게 맞는 건가..?
총평
- 풍경용으로 추천
- 저장용량과 PC사양, 좋은 렌즈를 갖출 수 있다면 더더욱
- 가격도 나름 착해진 상태
- 크롭해서 구도 잡기 쉬움
- 인스타, 단순 취미용으로는 오버스펙
- 초점 살짝만 나가도 티가 너무 많이 남
- 바디와 렌즈도 비싸지만 주변 환경에도 은근 돈 많이 들어감
고화소 바디인 소니 A7R4A는 후보정 관용도도 진짜 좋고 리얼타임트래킹이 있어서 AF로 대상을 스토킹하는 능력도 뛰어난 팔방미인 바디이지만 어찌보면 카메라계의 AK47라고 생각함. 진짜 강력하고 좋은데, 반동제어 못하면 트롤 똥총이 되는 것처럼.. A7R4A 역시 좋은 렌즈, 저장공간, PC사양 등등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크롭바디를 사용했을 때보다 작업환경의 쾌적함이 떨어지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고화소뽕은 아주 잠깐이다. 초반에는 나도 고화소라는 늪에 빠져 나도 모든 사진을 확대해가면서 침을 질질 흘렸는데, 시간이 지나니 한장한장 대충 빠르게 넘기게 되더라. 어찌 보면 나는 고화소 바디보다 가끔 들여다볼 현미경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A7R4A를 사용하면서 필자는 아주 개떡 같은 습관이 생겼다. 무슨 사진을 찍던 "응~ 크롭하면 그만이야~" 라는 마인드가 깊게 박혀버린 탓인지 예전보다 사진을 더 대충대충 찍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에는 A7M4가 자꾸 눈에 아른거리는데, 왠지 고화소에서 내려가면 역체감이 심하게 들것 같기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사진 실력은 그대로인데 장비 욕심은 점점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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